[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제 몸과 감정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삶은 아니었을 거예요.” 배우 윤서원은 인터뷰 말미에 ‘배우를 선택한 자신이 정말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그 말속에는 단순한 자기 위안도, 허세도 없었다. 땀과 노력, 성장과 고통을 거쳐온 배우로서의 여정이 만든 말의 무게였다.

올해로 서른두 살, 대학로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에서 극 중 인물 ‘방배’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신인 배우 윤서원.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그녀는 이미 자신만의 루틴과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가 시작된 예술가의 집 한켠, 그녀는 마치 일기를 쓰듯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말을 풀어놓았다.
“처음엔 그냥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청소년 연극대회스텝으로 참여했다가 우연히 무대에 서게 됐죠. 커튼콜을 받을 때 받았던 박수 소리, 그때의 그 뜨거움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렇게 연기를 향한 첫 마음은 ‘멋짐’이었지만, 이후 기다림과 좌절, 수많은 오디션의 고배 속에서도 그는 “그 시간마저 의미 있었다”라고 말했다. 윤서원에게 연기는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훈련’이자, ‘정답 없는 협업의 예술’이었다.
“작품 안에서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 배우는 고립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열린 마음으로 시도해 보고, 조율하며 만들어가는 방식을 더 좋아해요.”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개발한 루틴을 따른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림 그리기’다. “제가 만화를 좋아하거든요. 인물을 처음 만나면 그 캐릭터를 그림으로 그려요. 그러면 그 인물이 머릿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살아나요. ”감정선을 그림으로 시각화하는 이 방식은, 그녀가 캐릭터와 조우하는 가장 깊은 통로가 되어준다.

그녀가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체험한 순간은 연기 훈련 중 ‘호랑이 걷기'(네 발로 연습식을 1000 바퀴 돌기)’라는 신체훈련에서였다. “그날은 정말 복합적인 감정이 폭발했던 날이었어요. 날은 흐린데, 컨디션 난조에, 머리는 아파오고, 타인의 실수로 제가 욕을 먹고, 모든 약속은 취소되고, 연습실에서 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한마디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던,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한 번에 다 무너진 날이었어요. 쌓였던 시간들이 폭팔한 거죠.” 하지만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날 명상하며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묻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 의식의 흐름이 지금 제 연기의 큰 자산이 되었어요.”
<2호선 세입자>에서 그가 맡은 ‘방배’는 따뜻하면서도 억척스러운 ‘세입자 리더’. 외형적으로는 전형적인 중년 여성과 거리가 있지만, 윤서원은 오히려 그 간극을 줄이는 과정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관객이‘아, 저 사람이 방배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게 목표예요.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무대의 흐름을 이끄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이 작업이 정말 즐거워요.”

그녀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안의 선입견이 깨질 때, 저는 자라나는 것 같아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저라는 존재가 더 크게 확장돼요.”
가장 하고 싶은 연기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 그녀는 <메데이아>나 <사탄동맹>의 살로메 같은, 온몸을 불사를 듯 뜨겁게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는 단호하게 말한다. “기본이 가장 중요해요. 딕션, 발성, 감정 분석…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방법까지 준비된 사람이어야 해요. 싫어도 결국, 기본입니다.”
배우 윤서원은 고백한다. “배우로 살아가는 일이 항상 행복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저는 배우가 되어 참 다행이에요.”
무대 위의 진심이 그녀를 배우로 만들었고, 삶의 매 순간이 그 선택을 증명 하는 듯 하다. 그녀의 연기를 오랫동안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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