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파과'는 멍들고 흠집난 과일이다. 세상은 나이든 여성, 쓸모를 다 한 인간을 파과 취급한다. 유효기간이 지난 폐기물이라고, 퇴물이라고 말하며 주류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자신의 쓸모는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아무도 사지 않는 천덕꾸러기 파과를 다시금 손에 쥐도록, 결코 버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영화 '파과'는 자신의 쓸모를 몸소 보여주는 한 늙은 여자의 이야기다.
민규동 감독은 충무로에서 보기 힘든 색다른 소재를 선택했다. 왕년의 레전드, 이제는 대모님으로 불리는, 흰머리가 그득한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혜영 분)이 주인공이다. 40여년간 냉혹한 청부살인자로 활약해 온 조각의 몸상태는 예전같지 않고 온통 삐걱댄다. 주책없이 손은 떨리고, 건강검진 결과도 한숨을 자아내게 만든다.
![영화 '파과'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https://image.inews24.com/v1/ffcc6fd92f6e30.jpg)
평생동안 곁을 내주지 않았던 조각, 하지만 나이가 들자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피 흘린채 길바닥에 쓰러진 개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일 따위는, 예전의 그라면 없었을 일이다. '늙고 병들었다고 버림받는 건 너무 안쓰럽잖아요'라는 말에 늙은 개를 집에 들이기까지 한다.
이제 그의 시선은 강선생을 향한다. 그는 과거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자신을 구해준 류(김무열 분)를 떠오르게 한다. 홀로 딸아이를 키우는 선량한 강선생은 어느새 조각이 지켜주고 싶은 존재다.
이런 조각 앞에 젊고 능력있는 20대 킬러 투우(김성철 분)가 등장한다. 투우의 존재는 늙고 나이든 조각을 위협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성큼성큼 조각에게 다가와 거침없이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조각과 치열하게 맞선다.
영화의 백미는 극 후반 조각과 투우의 강렬한 액션이다. 맨손격투에 총, 검, 와이어까지 총출동했다. 63세 배우 이혜영은 둔탁하지만 여전한 실력을 갖춘 조각을 100% 소화해낸다. "실제 실력보다 훨씬 능력있는 여성으로 나왔다"는 이혜영의 말은 겸손에 불과하다. 조각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쏟았을 피, 땀, 눈물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지경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표현이 이토록 와닿은 적은 없었다.
김성철은 비밀을 감춘 킬러이자 무자비한 살인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천진한 눈망울 뒤의 잔인함을 표현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뮤지컬 '데스노트' 엘의 모습도 엿보인다. 이혜영과 맞대결을 펼치며 전우애가 생겼다고 밝힌 그는 "마지막 액션신을 마치고 감독님과 이혜영 선생님과 함께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두 사람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명장면은 영화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파과' 이혜영 [사진=NEW, 수필름]](https://image.inews24.com/v1/fa5e82f9d392f5.jpg)
이 외에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로 떠오른 대세 신시아가 조각의 어린시절을 연기한다. 순진무구한 소녀부터 킬러 본능을 깨닫고 피범벅이 된 얼굴까지 임팩트있게 표현한다. 조각의 롤모델이 되어준 류 역의 김무열, 극중 가장 현실감 있는 캐릭터인 강선생 역의 연우진까지, 다들 제 몫의 활약을 펼친다.
앞서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통해 첫 선을 보인 '파과'는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와 베이징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을 받았다.
30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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