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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절망을 노래로 승화시킨 인생 3막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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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절망, 그러나 나는 다시 노래한다!

[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한국 성악계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발휘하는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그는 두 차례의 인생 역전극을 통해 예술적 성취와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건설 현장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입은 후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 후 두 번째 사고로 손과 시력까지 잃은 위기 속에서 36세에 수능을 치르고 음대에 진학, 성악가로 다시 태어났다. 인생 3막을 개척한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극복 신화를 넘어 예술을 통한 인간 승리를 보여준다. 황현택의 커다란 이야기를 이 좁은 지면에 담아보고자 한다.

성악가 황현택 [사진=황현택]

■ 하나. 넘어짐

스물여섯, 인생의 봄날이 그렇게 끝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크레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크레인이 넘어지자, 사람들이 달려왔다. 큰 소리를 지르며 그를 구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스라이 사그라졌고, 그 순간부터 그렇게 세상은 변해버렸다. 결혼 6개월 만이었고, 아내는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작은 생명을 생각하면, 눈물보다 미안함이 먼저 밀려왔다.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수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차라리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술에 취해 강물에 뛰어들려 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어요. 죽을 수도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만취한 채 눈을 떴을 때, 만삭의 아내가 옆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곧 아빠가 될 사람이었다. 내가 죽으면, 내 아내는 남편 없는 여인이 되고 아가는 아비 없는 아이가 된다.”

“그 순간 깨달았어요. 살아야겠다고. 살아줘야겠다고.”

황영택은 쓰러질 수 없었다. 재활을 목적으로 우연한 기회에 휠체어 테니스를 만나게 되었다.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 일원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그의 의지가 그를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라는 목표를 만들어 냈다. 도전도 어려운 일이지만 실행은 더 큰 도전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나와 폐타이어를 휠체어에 묶고 운동장을 돌았다. 하루에 테니스공을 3,000개씩 쳤다. 3년을 넘게 그렇게 연습했지만, 국가대표는커녕 선수 선발 32강에도 들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쯤에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그 진심을 알아준 한 감독님이 다가왔다. “네가, 테니스에 누구보다 진심이란걸 알아! 근데 운동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이 필요해!”라고 하면서 일본으로 가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꿈을 향해 나아가기엔 그들은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훈련비와 생활비 이 모든 것이 부담이었다. 그때 아내가 “당신이 살아야 우리 가족이 살아요!” 하면서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기꺼이 내어주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일본에서 체계적인 훈련이 그의 몸을 바꿔놓았다면, 부인의 믿음이 그를 다시 일으켰고, 그 노력이 하늘에 닿았던 까닭일까! 국가대표 선발 결승 3시간 48분 접전 끝에 국가대표 1위로 선발됐다. 그는 그렇게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테니스 국가대표 시절 [사진=황현택]

”무엇보다 자랑스러웠던 건, 시합장에서 저를 바라보던 아내의 눈빛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해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는 자신에게 가끔 되묻는다고 합니다. ‘그날, 그 사고가 내 인생을 망친 걸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사고는 내 삶의 방향을 바꿨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이의 아빠이며,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였고 지금은 성악가다. 인생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란 걸, 나는 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나도 그렇게 일어섰다는 걸.”

■ 둘. 쓰러짐

테니스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99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던 그는 또 다른 사고로 인해 안타깝게도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두 번째 큰 사고로 “라켓을 잡을 손도, 공을 쫓을 눈도 잃었어요. 다시는 코트에 설 수 없었죠.”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그에게, 두 번째 사고는 더 치명적이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테니스를 포기해야 했을 때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과 아내의 존재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입’은 살아 있었죠. 노래는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황현택은 다시 도전했다. 자신에게 남아있던, 유일하게 정상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던 ‘입’과 ‘목소리’를 활용한 또 다른 삶이 시작된 것이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수능과 실기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성결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사랑의 음악회 독창사진 [사진=황현택]

하반신 마비로 인해 횡격막 사용이 불가능한 신체 조건에서 황영택은 독자적 발성법을 연구했다. 복대를 착용한 상태로 배꼽 위 근육을 활용해 공명을 일으키는 이 방법은 의료진으로부터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완성도 높은 소리를 구현해 냈다. "휠체어 테니스 선수 시절 단련된 폐활량이 고음 발성을 가능케 했어요." 그렇게 자기 몸을 악기로 만들기 위해, 그는 하루 10시간 이상의 연습으로 이를 극복했다. 현재 성악가로 변신한 황영택은 공연과 강연, 방송 출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황현택 공연사진 [사진=황현택]

■ 셋. 인생 3막

그는 예술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예술 행정가로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장애인 문화예술 단체총연합회’에서 장애인 예술 정책위원장을 맏고 있고, ‘중앙대학교 문화예술 경영 연구소’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장애인의 권리와 문화예술의 가교 구실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중앙대학교 예술 경영학 석사 졸업, 추계예술대학원 박사 수료 후 예술 행정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갖추며 장애 예술인의 창작 환경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일터에서 미래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리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타이어를 끌며 운동장을 돌았던 국가대표였다. 그리고 하루에 10시간씩 노래를 연습하던 성악가로 변신했다. 이제는 강연가로, 활동가로, 교육자이자 행정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건 아내입니다. 스물두 살에 만나 35년을 함께했어요. 저에게는 ‘하나님’ 같은 존재예요. 전부를 희생하고, 지금도 제 손이 되어 주죠. 평생을 바쳐 저를 만들어 준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는 첫 성악 지도를 해준 테너 국윤종 선생, 대학에서 그를 품은 김동현 교수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겁니다.”

황현택 프로필 사진 [사진=황현택]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애의 무게도, 손톱 밑 가시의 고통도, 결국 고통은 각자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마세요. 하루하루 쌓이는 흙이 산이 되듯,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의 그 하루가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삶은 하루하루 쌓이는 흙처럼… 나를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황영택 성악가의 이야기는 단지 극복의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노래가 된 인생이며,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되어줄 선율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수원=박상욱 기자(sangwoo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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