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을 벗어난 버스는 어느새 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자, 낚시꾼인 듯싶은 옆자리의 노인이 또다시 허깨비처럼 중얼거렸다. 버스가 탄광촌을 들어서기 전에도 댐에 물이 들어차면 전남 제일의 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둥, 땅값이 뛸 것이라는 둥 웅얼거렸던 것이다.
"지형 탓이갔다만 이 강이 우리나라 강중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 흐르는 강, 아니갔어?"
"계속 북쪽으로 흐르다가 압록에 가서 방향을 틀디만 말이야."
압록(鴨綠). 그곳이라면 봉옥이도 번뜩 생각이 났다. 재작년에, 광주항쟁 때 죽은 남편의 위패를 태안사에 옮겨놓고 구례로 가는 길에 그곳에서 섬진강 민물고기 매운탕을 먹어보았던 것이다. 매운탕을 좋아한 남편 생각이 나 눈시울을 붉혔던,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지명이었다.
"여기도 다 수몰이 될 거인데 아까운 풍경이다."
그러고 보니 노인은 혼잣말을 즐기고 있을 뿐이지 애초부터 봉옥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관북 사투리를 한두 음절씩 쓰는 것으로 보아 노인의 고향은 이북이 분명했고, 노인은 이곳의 압록에서 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이북의 압록을 좇고 있는지도 몰랐다. 문득, 봉옥은 옆 자리의 노인이 아버지의 분신인 양 안쓰러웠다. 텅 빈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처럼 눈이 시렸다. 붉게 활활 타는 노을을 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아렸다. 세월의 소용돌이에 쓱 그어진 흉터를 숨긴 채 혼자서 응어리를 달래며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노인이 삶은 계란을 우물거리고 있을 무렵, 봉옥은 완행버스에서 내렸다. 수몰이 될 것이라는 장터는 흡사 한차례 전쟁을 치르고 난 곳처럼 흉흉하였다. 봉옥이 다녔던 중학교 건물은 유리창이 거의 깨어진 채 휑하니 비어 있었고, 민가들은 한 귀퉁이가 헐려 있거나 아예 잡초가 돋아난 빈집이 많았다. 일본 사람들이 설계하여 지었다는 단층 목조건물의 지서도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없었다. 가게를 겸하고 있는 버스 정류장도 이주를 서두르고 있는 듯 스산하게 보였다. 봉옥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스정류장 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기다리는 버스가 아직 오지 않은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봉옥은 아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