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최신


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조이뉴스TV

[아침소설] 북으로 흐르는 강 <1> - 정찬주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두 가랑이를 연상시키는 능선 사이의 협곡은 거웃처럼 검은 빛깔 투성이였다. 진폐증 환자 같은 뻣뻣한 나무들도, 울퉁불퉁한 좁은 길도, 산기슭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도 검은 탄가루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계곡의 뼈 무더기처럼 튀어나와 있는 바위들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마저 거무스름히 보였다. 검붉게 죽어가는 고사목의 가지들이 차창을 탁탁 칠 때마다 봉옥은 고개를 움찔거렸다. 잊고 싶은 오욕의 기억들이 그 써늘한 촉수를 내뻗치는 것 같아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것이었다.

봉옥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꺼꾸리'라고 불렸던, 이제 하루 이틀을 못 넘길 것 같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빌어 주고 싶어서였다. 중풍의 긴 투병생활의 고통을, 꺼꾸리라는 말의 괄시를, 6·25 때부터 안골 마을 사람들한테 마귀처럼 들씌워졌던 좌익이라는 멍에를, 홀아비로서의 외로움을 이제는 훌훌 털어버린 채 참으로 좋은 생을 맞이하도록 빌고 또 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봉옥은 금세 기도하는 걸 단념하고 말았다. 아버지라는 말만 침이 말라 바싹바싹 타는 입안에서 맴돌 뿐 그 다음 말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엉뚱하게도 봉옥이 현소와의 불륜을 청산하고 마을을 떠나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노잣돈처럼 주었던 몇 마디의 말만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서 떠나그라잉. 지금이 젤로 좋은 때인께. 새벽을 시작이라고 허지 않드나? 대처에 나가 새로 시작허그라."

"난 사람덜헌티 네 떠나는 꼴을 보여주기 싫응께. 저 하늘을 보그라. 힘차게 물결치는 것 같지 않느냐. 기죽지 말고 저러크롬 살그라."

봉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를 터무니없이 원망했던 사람 중에 자신도 예외는 아닐 터였다. 객지를 나와 장돌뱅이처럼 떠돌면서 끼니를 거를 때마다, 재수가 없을 때마다 맨 먼저 아버지를 원망했던 것이다.

남편이 모른 척하지 않고 "고향이 있으면 뭐 낫당가. 발길 닿는 대로 정 주면 고만이제."하면서 달랬지만 억센 성깔의 봉옥이를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봉옥의 기분을 삭이기 위해 남편이 쑥대머리를 한 가락 뽑으며 광대 노릇을 해주어도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주요뉴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아침소설] 북으로 흐르는 강 <1> - 정찬주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